다시 언약 앞으로
요단강은 이미 건넜다.
기적은 일어났고, 약속의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하나님은 곧바로 전쟁을 명령하지 않으신다.
여호수아 5장에서 하나님은
칼을 들기 전에, 먼저 멈추라 하신다.
정복하기 전에, 다시 언약 안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위대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적을 다음 단계로 서두르지 않으시고
길갈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시며,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다시 뒤로 돌아보라고,
정복의 속도를 높이기 전에 언약의 자리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만 아직 ‘약속의 백성’으로 다시 서야 했고, 그래서 하나님은 전쟁의 칼보다 먼저 언약의 표를 요구하시며, 승리의 전략보다 먼저 정체성의 회복을 명하신다.
길갈에서의 할례는 과거로 돌아가는 의식이 아니라,
미래로 가기 위한 준비였고,
유월절은 광야의 기억을 붙잡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고백하는 예배였으며,
만나가 그친 것은 은혜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기적이 아닌 책임 있는 순종으로 살아가라는
새로운 단계로의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말씀하신다.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다시 누구의 백성으로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여호수아 5장은 여리고 전투의 서막이 아니라,
언약으로 다시 숨을 고르는 장면이며,
앞으로의 승리를 보장하는 조건은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태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금 나의 자리도 다르지 않다.
긴 시간의 사역을 지나 새로운 사역의 땅 앞에 서 있지만, 하나님은 더 빨리 확장하라고 재촉하지 않으시고,
먼저 멈추어 다시 언약 앞으로 나오라고 부르신다.
사역의 이름보다 부르심을, 결과보다 관계를,
계획보다 약속을 먼저 붙들 때, 하나님은 비로소
“이제 내가 너와 함께 여리고로 가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언약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멀리 가는 길이다.
킹덤 브릿지 미션은
성과로 증명되는 사역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시작되는 사역이어야 한다.
나도 지금 ‘요단강 이후’의 시간에 서 있다.
30년의 사역을 건너
새로운 사역의 땅에 들어왔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먼저, 다시 내 앞에 서라.”
“사역자가 아니라, 언약의 사람으로.”
사람을 모으기 전에
기도로 구별되고,
일을 벌이기 전에
말씀 앞에 서는 공동체.
길갈이 없는 여리고는 없고,
언약 없는 확장은 없다.